기획회의 6

사직서와 이력서 사이

※ 〈기획회의〉 456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사직서와 이력서 사이 김진형, ‘아직은’ 생각의힘·아토포스 편집장 soli0211@gmail.com 헤아려보니 출판사에서 일한 지 십사 년 정도 되었습니다. 십사 년간 세 곳의 출판사에서 일했습니다만, 컴퓨터 하드 속에 감춰두었던 사직서를 꺼내어 슬쩍 날짜를 적어보거나 이력서에 그간의 세월을 보완해놓는 일은 훨씬 잦았습니다. 사직서와 이력서를 새삼 확인해보는 일요일과 월요일 사이의 시간들은 유난히 빠르게 흘렀습니다. 거취에 대해 고민하는 후배들을 다독여 그들의 자리로 다시 돌려보내곤 했지만 정작 제 자신은 쉬이 흔들리고 무너지곤 했습니다. 노동자로서의 자괴감을 토로하는 후배들에게 저는 그들에게 쉬이 동조하기보다는 정색하며 말하는 편을 선택했습니다. 편집자는 노..

희망과 슬픔의 책들 사이에서(기획회의 395호)

기획회의 395호(2015년 6월 30일) 희망과 슬픔의 책들 사이에서 김진형(생각의힘 편집장) 명멸하는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길을 잃을 때가 있었고, 길을 잃어야만 닿을 수 있는 삶의 진실이 있었다. 간혹 이곳은 하나의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같다는 생각이다(또는 여러 가상현실을 동시에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페르소나의 욕망들이 발현하여 불의에 분노하고 정의를 부르짖으며 진실을 요구하지만, 정작 세상은 지독한 무관심과 이기심으로 슬픔의 사람들을 포위하고 겁박한다. 세상의 슬픔은 굳건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평온하다. 여성과 성소수자를 둘러싼 수많은 층위의 말들이 전위를 호령하지만, 가부장적 폭력을 일삼는 우리의 내면과 일상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통찰을 거..

행운을 빛나는 텍스트로 변주하다_한겨레출판 이기섭 대표 인터뷰(기획회의 391호)

기획회의 391호(2015.5.5)_ 한국의 출판기획자 2 ‘행운’을 빛나는 텍스트로 변주하다-한겨레출판 이기섭 대표 김진형 책담 편집장 soli0211@gmail.com 2014년 4월 이후, 이 땅의 봄은 소멸했다. 소멸하였으므로, 우린 지독한 슬픔을 앓는다. 이제 무엇으로 출판의 소명을 찾아야 하나, 그런 고민들이 휘몰아치던 세월호 1주기를 며칠 앞둔 어느 날, 한겨레출판 이기섭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그의 책상에 놓여 있던 한 권의 책을 보았다.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그림과 글로, 세월호에서 희생당한 단원고 아이들을 박재동 화백이 그렸고 거기에 가족들의 편지를 함께 엮은 책이다. 막 출간된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책이었다. 〈한겨레신문〉에서 이 연재가 시작할 때 무작정 신문사로 전..

담론과 서사의 빈곤으로 방황하는 기독교 출판 (기획회의 367호)

기획회의 367호_갈 길 잃은 종교서적 담론과 서사의 빈곤으로 방황하는 기독교 출판 김진형, 한솔수북 인문교양팀장 출판은 결국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욕망에 응답하는 것, 혹은 그 욕망에 대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욕망에 응답하는 것과 욕망을 숙고하는 것,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 출판이다. 편집자로서 난, 이 두 가지를 모두 욕망한다. 베스트셀러도 만들고 싶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책도 만들고 싶다. 베스트셀러 중에 물론 좋은 책들이 있겠지만, 모든 좋은 책들이 베스트셀러는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안 되는 출판 경험으로 보건데,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책’을 찾는 독자들도 굳건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들로부터 출판의 당위는 한껏 위로받는다. 기독교 출판계 대략의 흐름, 2000년대 이..

세상에서 가장 옳은 질문이, 이제 막 주어졌다 (기획회의 364호)

기획회의(364호, 20130322)_출판사 서평 세상에서 가장 옳은 질문이, 이제 막 주어졌다 공부란 무엇인가 (이원석 지음|책담 펴냄|10,000원)이원석은 공부에 대한 오랜 통념을 전복하고 새로운 통찰을 시도한다. 바로 존재를 변혁하고 삶을 벼리고 우정을 도모하는 공부의 삶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행복은 공부 순이다. 이원석 선생을 처음 만난 건 2007년 2월이었다. 당시 일하던 출판사는 해마다 독자들을 위한 독서와 글쓰기 워크숍인 ‘문서학교’를 열었고, 담당자였던 나는 이원석 선생을 ‘독서법-서평쓰기’ 강사로 초청하였다. 그는 여러 매체에 서평을 쓰고 있었는데, 텍스트에 대한 집요한 열정이 돋보이면서도 구도자적 지향을 성실히 담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실은, 그를 강사로 초청하는 데 내부의..

반값 할인의 불편한 진실

알만한 사람은 모두가 아는 '불편한 진실'. 모두가 알면서도, 이 문제를 풀지 못하는 이유는, 그 속내에 각자의 욕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의 욕망, 온라인 서점의 욕망, 도/소매상의 욕망, 독자의 욕망... 한치 앞도 분별하는 온갖 욕망들은, 가야할 길이 자명함에도, 결코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 아니, 찾지 못하는 척 한다. 욕망의 각성,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시작할 수 있을까. http://blog.naver.com/khhan21/110144342972 ★[한기호의 책동네이야기] 반값 할인의 불편한 진실 온라인서점에서 반값 할인을 하는 것이야 일상적이다. 최근엔 밀리언셀러가 된 초대형 베스트셀러마저 반값 할인 대열에 합류했다. 처음에 출판사는 과도한 재고를 싼값에 처분해 자금 흐름을..

scrap_ 2012.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