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 3

프러포즈

A 선생님께, 책의 ‘꼴'을 생각할 때마다 회의懷疑합니다. 책은 무고한 나무들의 숱한 희생을 담보로 탄생하는 물질인 까닭에, 어제 스치듯 말씀하신 것처럼, 과연 이 책이 탄생의 당위를 획득할 수 있을지 묻습니다. 그 당위는,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 혹은 던지는 질문들에 관한 것입니다. 물질이 사유로 조탁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선생님을 저의 저자로 청하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의 여정에 깃든 수많은 질문이 다른 이의 텍스트를 빌어 인용될 때, 전 정색하며 묻고 싶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라고. 오직 당신의 텍스트로 읽고 싶습니다, 라고. 수많은 질문들이 하나의 생각으로 발현되는 지점에서, 선생님은 지금 무엇을 열망하고 계신지요. 그리고 그 질문을 사수..

view_/책_ 2015.07.16

희망과 슬픔의 책들 사이에서(기획회의 395호)

기획회의 395호(2015년 6월 30일) 희망과 슬픔의 책들 사이에서 김진형(생각의힘 편집장) 명멸하는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길을 잃을 때가 있었고, 길을 잃어야만 닿을 수 있는 삶의 진실이 있었다. 간혹 이곳은 하나의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같다는 생각이다(또는 여러 가상현실을 동시에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페르소나의 욕망들이 발현하여 불의에 분노하고 정의를 부르짖으며 진실을 요구하지만, 정작 세상은 지독한 무관심과 이기심으로 슬픔의 사람들을 포위하고 겁박한다. 세상의 슬픔은 굳건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평온하다. 여성과 성소수자를 둘러싼 수많은 층위의 말들이 전위를 호령하지만, 가부장적 폭력을 일삼는 우리의 내면과 일상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통찰을 거..

그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보다 아름답다

사무실 창밖으로 국회가 내려다보인다. 이곳은 늘 소란하다. 시위하는 이들과 그들을 에워싼 경찰들 사이로 무채색 사람들이 무심한 얼굴로 지나친다. 약속이 없는 날엔 점심을 먹고 국회를 산책한다. 국회도서관 산책길을 걷는다. 대로변 옆으로 난 산책길에 대해 의심하였으나,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대로변의 소음들은 차츰 사라지고 아득한 충만이 서서히 차오른다.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바지런히 오가며 재잘대는 새들이 온갖 소음에 지친 나를 맞는다. 그들 소리에 소음이 잊히는 것이다. 의자에 앉아 있을 때면 그들은 내 앞에서 머뭇머뭇 서성이다가 소심한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국회엔 이름 모를 새들이 산다. 그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보다 아름답다.

視線_ 2015.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