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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럼》《필리버스터》

Soli_ 2016. 3. 30. 10:08

페이스북에서 소개한 두 권의 책.



2016년 3월 22



《처럼

시로 만나는 윤동주

(김응교 지음, 문학동네, 2016)


모름지기 시인의 책이라면 이러해야 한다. 이 말은 윤동주 시인의 책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시인만이 쓸 수 있는 책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윤동주 시인에 대한 책의 당위이기도 하고, 김응교 시인만이 쓸 수 있는(써야 하는) 책의 소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당위를 수렴하는 소명의 결과다. 간혹 책의 갈피 속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곡진한 숨결은 그 때문일 것이다. 소명의 숨결이다. 


이 책은 작가론, 혹은 평전의 형식을 띠고 있다. 시인 쉼보르스카는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에서 “단어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를 갖는 시어(詩語)의 세계에서는 그 어느 것 하나도 평범하거나 일상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김응교는 윤동주의 시어들에게서 그 시대의 동심과 애통을 포착하여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했던 윤동주의 길을 섬세하게 복원한다.


그리고 만주 명동마을에서 후쿠오카 형무소까지 이르는 그 길은 정지용, 문익환, 니체, 투르게네프, 벤야민, 레비나스, 바디우, 블랑쇼 등을 만나 세계로 확장되고, 윤동주는 하나의 ‘고전’이 된다. 무릇, 오늘과 내일의 주석으로서의 고전이다. 통절의 시대, 슬픔의 곁에서 당신을 위로하는 시인의 당부가 이 책에 새겨져 있다. 그렇게 ‘동주'(東舟/童舟)의 길이 우리의 길이 된다. 우리가 이 책을 애써 읽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윤동주의 시에는 인간의 희망에 대한 ‘무제한적인 진보’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윤동주의 시에는 분명 절망에서 머물지 않는 끊임없는 잉걸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 무제한적인 진보를 믿었기에 그는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공감하는 이들이 아직도 윤동주의 시를 읽는 것이 아닐는지요.”(503쪽)





2016년 3월 25일



《필리버스터

민주주의, 역사, 인권, 자유

(이김, 2016)


예약 주문해서 받았던 책을 이제서야 뒤적인다. 이 책은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192시간 27분의 필리버스터 속기록 전문을 담았다. 38명의 국회의원들 중 어떤 이들은 이번에 새롭게 평가를 받거나 스타가 된 이들도 있다. 그들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 외에도 오랜 시간 수많은 이들이 저곳에서 거악에 맞서 온몸으로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혐오의 시대는 그들의 발언과 투쟁을 차단하고 가뒀을 것이다. 


정치혐오는 정치, 자본, 언론을 장악한 권력의 오랜 기획이다. 정치를 혐오하는 시민들을 오히려 정치의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지난 필리버스터 정국은, 견고했던 혐오의 편견이 조금씩 무너지던 극적인 순간들이었다. 비로소 그들이 시민들에게 발견된 것이다. 시민들은 그제서야 저 자리에서 외롭게 싸우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물론 영악한 권력은 정치혐오의 기획을 더욱 치밀하고 노골적으로 추진할 것이고 국민들은 쉬이 망각의 습속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이 책의 의미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저들의 투쟁을 기록하는 것. 그 싸움을 간직하고 이어가도록 추동하는 것. 그러므로 “민주주의, 역사, 인권, 자유”라는 이 책의 부제는 합당하다.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싸움이므로.


필리버스터가 3월 2일에 끝났는데, 이 책의 출간일은 3월 16일이다. '257*182' 판형에 빡빡하게 앉힌 텍스트로만 1344쪽이다. 무릇 책의 소명을 다시 생각한다. 이 책을 만든 이들에게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