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_/책_

여성, 당신의 삶에 이 책들이 함께하기를

Soli_ 2016. 1. 12. 00:49
저를 아직도 ‘간사’라고 부르시는 분께서, 여성과 엄마의 삶을 위한 추천 도서를 부탁하셨습니다. 그분께 답장으로 쓴 글입니다. ‘간사’로 호명될 때, 아직도 절반의 설렘과 절반의 부담감을 갖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저를 불러주시는 분들은 대개 저의 지난 삶을 애써 기억해주시는 분들이지요. 그래서 이런 글을 쓰고나면, 설렘과 부담감이 있었던 자리엔 따스한 감사의 온기가 남습니다. 고맙습니다. 




○○○ 님께, 


여성의 삶, 엄마의 삶에 대한 질문은 언제나 저를 당혹하게 만듭니다. 제가 감히 그 신비를 제대로 알 수 있을까요!

‘안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야다’라는 단어는 남자와 여자가 성적으로 결합하는 ‘하룻밤’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지요. 무엇을 안다는 것은 그것을 내가 경험하였다는 것, 지식의 층위가 아니라 경험의 층위에서 시작된다는 의미겠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결혼 전엔 '여자'를 제법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관련 책을 많이 읽었고 심리학 공부도 나름 열심히 했고 여성주의 강좌나 결혼예비학교도 다녔으니까요. 후배들이나 이성 친구들에게 그럴듯한 말로 상담하거나 훈수하고는 했지요.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야 여성에 대한 제 지식의 무용과 무위를 여실히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취향과 고집, 철학과 가치, 세계관과 신앙, 시간과 존재를 아내와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여자란 존재를 '경험'하였던 것이지요. 그제서야 알기 시작했고 어쩌면 지금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평생 배워야겠지요.

(※이와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IVP를 그만둘 때 썼던 글이지요. http://soli0211.tistory.com/422)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몇 권의 책을 추천해드립니다. 
저에게 여자란 존재, 여자의 삶, 그리고 부모의 삶을 가르쳐주었던 고마운 책들입니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 2013)


두고두고 읽는 책입니다. 이 책을 바탕으로 딸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지요(http://soli0211.tistory.com/474). 이 편지는 ‘스무 살 예지’를 가정하고 쓴 것입니다. 지금은(당시엔) 비록 여섯 살이지만(이었지만) 앞으로 여성으로 자라갈 딸에게 쓴 것이지요. 다음은 그 글의 일부입니다.

연인의 사랑이 결혼을 결심할 때, 여러 변수가 새롭게 등장합니다. 결혼한다는 것은, 배우자가 속한 사회적 정황까지도 수렴한다는 의미입니다. 더 나아가 한국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사회적 정황은, 안타깝게도 여성에게 희생과 패배의 숙명까지 강요합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는, 여성들을 어떤 고착된 역할에 머물게 합니다. 또한 그것은 남성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성이 존재하는 범주 위에 남성의 주체도 성립하는 까닭입니다. 이 땅의 여성들에게 결혼이란, 희생과 패배를 받아들이거나, 그것과 맞서 싸우는 것을 각오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결혼을 결심하는 순간, 아니, 그 이전부터 여성으로 한국이란 나라를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 ‘여성주의’를 공부해야 합니다.

“나는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다는 것, 더구나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삭제된 역사를 알게 된다는 것은,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사회에 대한 분노, 소통의 절망 때문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 여성주의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의문을 갖게 하고,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대안적 행복, 즐거움 같은 것이다.”(책 중에서)


빨래하는 페미니즘(스테퍼니 스탈 지음고빛샘 옮김민음사 펴냄2014)

여성이 엄마로 자랄 때 종종 여성이란 존재의 본질이 망각되고는 하지요. 임신과 출산, 육아를 거치면서(거의 전담하면서) 여성이 아닌 엄마의 삶을 강요받습니다. 한국에선 더하겠지요. 그러나 엄마가 아닌 여성의 삶을 회복할 때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할 때 남성도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이 있거나 낯선 불편함이 있다면, 이 책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입니다. 이 책은 '페미니즘의 지도'를 제공합니다. 길을 잃었다면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페미니즘의 이상은 세상에서 단 한 번도 실현된 적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 이상이 실현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있다면 ‘우리’의 가정일 것입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강한 딸 키우기(리사 맥민 지음|홍상희 옮김홍성사 펴냄2003)

리사 맥민은 사회학자입니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여성에 주목하면서도 신학적 본질을 간과하지 않는 그의 글쓰기는 상당히 돋보입니다. 논리적이면서도 섬세한 직관이 돋보이죠. 여성의 성적 본질에 주목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감과 확신에 근거한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에로의 성장과 양육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제 딸 '예지'를 키우면서 큰 도움을 받은 책이기도 합니다.


올드걸의 시집(은유 지음청어람미디어 펴냄2012)

이 책에 대한 거의 유일한 불만은 이 책이 마치 ‘올드걸’들을 위한 책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십 대 초반에 결혼하여 아이를 둘 낳습니다. 그는 “엄마 아닌 생”을 갈망하는 “일찍 엄마가 된 소녀”로 오래도록 살았지요. 그리고 이제 마흔 넘어 자신의 삶을 ‘올드걸’로 규정합니다. 그러곤 “여전히 왕성하게 분열 중인 세포를 발견”하며 "두루두루 참을 만하다가도 견딜 수 없어지는 순간에 불쑥 튀어오르는 힘, 내 피만 알아차리는 저항”을 직면하기 시작합니다. 자신 안에 있는 “어떤 소녀”와 직면하는 것이지요. “올드걸은 고정된 인격체가 아니라 하나의 존재 양식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 책을 마땅히 ‘올드걸’로 살아야 할 분들이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자로서 간신히 표명한, 이 책에 대한 유일한 불만은 제 자신도 이 책의 독자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자각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처럼 '올드걸의 선택'이 꼭 시집일 필요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저자는 다만 시를 하나의 수단으로 올드걸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걸요. 그러니 어서 이 책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시의 일은 부상당한 이를 돌보는 것”이라고 하지요. 그러니 이 책 “올드걸의 시집”이 부상당한 당신을 돌볼 것입니다. 


그 밖에도 다음과 같은 책들을 추천드립니다.

대한민국 부모(이승욱, 신희경, 김은산 지음문학동네 펴냄2012)
엄마 되기, 힐링과 킬링 사이(백소영 지음대한기독교서회 펴냄2013)
와우 결혼(김종필, 정신실 지음죠이 펴냄2013)

(※《와우 결혼에 대한 소개는 다음 서평을 참조하세요. http://soli0211.tistory.com/461) 


가까이 계시면, 저희 아내를 만나시면 더 좋을텐데요. 나중에 기회가 있겠지요. 
오늘도 행복하시길 빕니다.

예지아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