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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와 멜랑꼴리의 경계선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책(출판저널, 2015년 4월호)

Soli_ 2015. 4. 16. 08:56

<출판저널> 2015년 4월호 이 달의 책 편집자 서평




애도와 멜랑꼴리의 경계선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책




오늘, 우리는 우울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산다. 우리는 우울을 먹고 마시며, 애도가 일상이 된 나날들을 산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2014)의 여주인공 산드라도 우울을 앓는다. 우울증으로 병가를 낸 사이, 회사는 직원들의 투표를 거쳐 그녀의 해고를 결정한다. 직원들은 그녀 대신 보너스 1000유로의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그녀는 사장을 찾아가 다시 한 번 기회를 청한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재투표를 앞두고 1박2일 간 산드라는 동료를 찾아 집을 나선다(그래서 이 영화의 원제는 “Two Days One Night”이다). 산드라도, 동료들도 고달프다. 신자유주의 사회와 만성화된 경제 위기는, 노동자의 삶에 우울의 증상을 추동하고 합리화한다. 


세월호가 차갑고 칠흑같이 어둔 바닷속으로 침몰했을 때, 우리는 애도와 멜랑꼴리 언저리에서 서성거렸다. 그제서야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을 망각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즈음 정신분석가 맹정현 선생의 글에 주목했다. “잊지 말하고 외치지만, 진정한 트라우마란 어차피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기억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잊을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트라우마를 입은 자들의 운명이다. 기억이란 우리가 기억하는 주체로 남아 있는 것을 함축한다. 하지만 트라우마는 우리를 압도하며, 우리를 대상으로 만들어버리고, 트라우마가 나를 기억한다. 내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바로 그곳에서 트라우마가 나를 기억해서 유령처럼 나를 기습하는 것이다.” ‘유령처럼 급습하는 트라우마’에 맞서,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라깡은 현대인 모두 신경증과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도착증도 말하였지만 그 논의는 다음으로 미루자). 신경증은 상실된 그 무엇을 찾아 방랑하는 자의 욕망이다(정상인은 모두 신경증자다). 애도는 상실한 대상을 잊지 않고 기억함으로써 대상으로부터 리비도를 떼어 내는 작업이다. 반면, 정신병으로 분류되는 멜랑꼴리는 주변 세계에 대한 관심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한다. “멜랑꼴리 환자는 상실감으로 인해 고통받지만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지 못한다.” 즉, 멜랑꼴리는 불가능한 애도다. 프로이트-라깡주의 정신분석가 맹정현 선생의 <멜랑꼴리의 검은 마술>은 바로 그 본격적인 논의를 시도하고 있다. 


맹정현 선생의 행보는 독보적이다. 문학, 미학, 철학 등 타 분야의 해석에 그치지 않는 정신분석학의 독자적 연구와 진전을 도모하며, 국내 최초의 프로이트-라깡주의 정신분석협회인 서울정신분석포럼(SFP)을 설립하여 정신분석가 양성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이 책은 SFP의 강의 시리즈 첫 번째 책으로, 강의를 글로 옮기는 지난한 작업을 통해 탄생했다. 그 작업을 ‘지난했다’고 회상하는 것은, 저자의 학문적 엄밀함에서 비롯한다. 정확한 언어의 범주와 논리를 고집했다. 보다 대중적인 언설로 일말의 상업성을 획득하고자 했던 편집자의 욕망이 자주 패배하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지난했던 편집의 시간들은, 성급히 포기하고 떠났던 프로이트를 선생으로 다시 독대하는 시간이기도 했으니 이 책은 내게 큰 행운이기도 했다.    


멜랑꼴리 환자가 이 세계 속에서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이 세계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개인적·사회적 상실 속에서 급습하는 우울에 맞서 애도와 멜랑꼴리의 위태로운 경계에 선, 그러나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