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_/영화_

시대의 우울에 맞선 간절한 응원과 연대

Soli_ 2015. 2. 3. 00:26
시대의 우울에 맞선 간절한 응원과 연대


내일을 위한 시간 Two Days One Night, 2014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출연 마리옹 꼬띠아르, 파브리지오 롱기온



동료를 선택하면 1000유로의 보너스를 잃는다. 그 동료는 휴직 중이며 우울증을 앓고 있다. 동료의 복직을 앞두고 사장은 그들에게 묻는다. 동료를 해고하는 데 동의하면 보너스를 주겠지만 동료가 복직하면 보너스는 없다. 작업반장의 회유와 협박이 있었다는 정황으로 인해, 14:2란 압도적인 수치로 보너스를 선택했던 첫 번째 투표는 무효가 되고 재투표가 성사된다. 그녀가 복직하는 월요일 아침의 비밀투표를 앞두고 이제 그녀가 동료들 설득하기 위한 1박2일(Two Days One Night)의 여정이 시작된다.     

"멜랑꼴리 환자는 상실감으로 인해 고통받지만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지 못한다. 또 지나치게 자신의 내면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타자가 없는 세계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아에 모든 리비도가 투자되어 있기 때문에, 멜랑꼴리 환자는 세계에 대한 관심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한다. [···] 자신 안에 고립되어 있지만, 과대망상증자와 달리, 자신을 비난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방식으로 나르시시즘적인 투자를 이룬다는 것이 특징이다."(맹정현, <멜랑꼴리의 검은 마술>, 책담, 근간)

매출 성장 동력을 상실한 신자유주의의 사용자는 노동자들 간의 이간과 겁박으로 효율을 유지하려 한다. 동료가 해직되면 주당 추가 3시간의 잔업수당이 확보된다. 거기다가 사장은 1000유로의 보너스까지 약속했다. 산드라는 직장을 잃으면 대출이 아직 많이 남은 집을 처분하고 다시 임대아파트로 가야 한다.



산드라가 우울을 앓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속 가능한 삶이란 아득한 꿈으로만 가능한 세상에서, 산드라는 우울을 앓는다. 우울의 정동은 자아 속에서 발현되고, 자아 속에서 침잠되며, 서서히 자아를 잠식한다. 고립된 자아는 도리어 자신을 비난하고 괴롭히는 방식으로 멜랑꼴리로 추락한다. 산드라의 우울은, 신자유주의의 겁박에 포위된 위태로운 존엄에 대한 하나의 은유다. 

산드라는 동료를 만나기 전에, 만나러 가며, 만나고 나서 항우울성 치료제를 먹는다. 산드라로 인해 어떤 동료는 성찰하며 돌이키지만, 어떤 동료는 냉소하고 분쟁하고 비난하고 분노한다. 보너스를 선택한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산드라는 감히 그들을 비난하지 못한다. 오직 자책하고 좌절하고 절망할 뿐이다. 위태로운 그녀 곁을 남편 마누가 따르며 격려하고 보듬는다.   




영화는 반복되는 패턴을 보이지만, 가녀리지만 굳건한 희망을 서서히 배태한다. 그녀의 곁을 지키는 동료들의 응원과 연대는 더욱 단단해진다. 일요일 밤까지 산드라는 일곱 명의 지지자를 얻는다. 한 명은 만나지 못했고, 한 명의 계약직 직원은 9월로 계약이 만료되는 자신의 처지로 인해(산드라가 복직하면 자신의 계약이 종료될 것이라는 걱정으로) 고심에 빠졌다. 




그녀는 복직되었을까. 영화의 마지막은 예고된 패배처럼 보이지만 결연한 반전을 준비하고 있다. 산드라는 스스로 패배를 선택하되, 그것을 ‘싸움’이라 불렀다. “자신 안에 고립되어” “자신을 비난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방식”의 멜랑꼴리를 극복해 낸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겁박된 존엄은 우울을 앓지만, 다르덴 형제는 산드라의 선택을 통해 다른 방식의 투쟁을 선동한다. 고요하지만 강렬한 감동의 파문은 거기서부터다. 패배하였지만 실패하지는 않았기에, 그녀는 이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다. 1박2일이란 한계 속에 고립되지 않는 산드라의 여정은, 고립에서 탈출한 우울처럼, 밝고 굳세다. 



ps. 
1.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다르다(그래서 감동한다). 
2. 이런 이야기를 다루는 뭇영화들과는 화법 자체가 다르다(그래서 강렬하다). 
3. 마리옹 꼬띠아르의 미모는 다른 노동자들과 너무 다르다(그래서 황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