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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과 서사의 빈곤으로 방황하는 기독교 출판 (기획회의 367호)

Soli_ 2014. 5. 20. 23:42

기획회의 367호_갈 길 잃은 종교서적



담론과 서사의 빈곤으로 방황하는 기독교 출판



김진형, 한솔수북 인문교양팀장


출판은 결국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욕망에 응답하는 것, 혹은 그 욕망에 대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욕망에 응답하는 것과 욕망을 숙고하는 것,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 출판이다. 편집자로서 난, 이 두 가지를 모두 욕망한다. 베스트셀러도 만들고 싶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책도 만들고 싶다. 베스트셀러 중에 물론 좋은 책들이 있겠지만, 모든 좋은 책들이 베스트셀러는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안 되는 출판 경험으로 보건데,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책’을 찾는 독자들도 굳건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들로부터 출판의 당위는 한껏 위로받는다. 


기독교 출판계 대략의 흐름, 2000년대 이후의 위기


한국 기독교 출판계는 1980년 전후부터 본격화되었다. 규장, IVP 등이 1978년에, 두란노가 1980년에 설립되었고, 홍성사는 1974년에 설립되어 1981년부터 기독교 서적을 출판하기 시작했다(이는 개신교 출판계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고, 가톨릭 출판계는 가톨릭출판사, 분도출판사 등을 통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소박하나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 지면에선, 출판산업으로서 유의미한 해석이 가능한 개신교 출판계에 한정하여 논하도록 한다). 


1980년대와 1990년, 그리고 2000년대까지 기독 출판계는 급격히 성장했다. 한국의 기독 출판사들은 영미권 복음주의의 주요 저작들과 저자들을 소개하여 한국 교회에 큰 자극을 주었다. 복음주의는 성서에 토대한 확고한 신념에서 시작하되, 그 지향하는 바에 따라 다시 여러 견해로 발현된다. 가장 대표적인 보수 기독교 진영은 교리와 신앙고백 등의 종교적 신념을 우선적 가치로 두는 ‘오래된 복음주의’를 주장한다. 칼빈과 조나단 에드워즈, 청교도에서부터 마틴 로이드 존스, 존 맥아더, 릭 워렌, 카일 아이들먼 같은 현대의 설교자들까지 이에 속한다. 국내 대부분 보수 교회의 목회자들도 이에 속하며, 대표적인 저자로는 김남준, 김서택, 박영덕 등을 들 수 있다. 반면, 교회의 시대적 역할과 현실 참여에 주목한 ‘새로운 복음주의’(Emerging Church) 진영도 주목할 만한 흐름을 만들고 있다. 이 진영의 대표적 인물로 브라이언 맥클라렌을 선두로 마이클 프로스트, 스캇 맥나이트, 랍 벨, 쉐인 클레어본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두 진영 사이의 중도적 위치에 있는 이들로는, 가장 대표적인 교회 지도자인 존 스토트를 비롯해 유진 피터슨, 달라스 윌라드, 필립 얀시 등을, 한국에선 옥한흠, 이동원, 김동호, 신국원, 이찬수 등이 있다. 이들은 어떤 특정 신념에 우선하여, ‘그리스도의 삶’에 주목하였다는 점에서 대중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개신교가 아닌 가톨릭에 속했던 헨리 나우웬 같은 이가, 개신교 대중 독자들에게 최고의 사랑을 받았다는 점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 기독 출판은 이들의 저작을 국내에 적극적으로 소개하였고 나름의 굳건한 흐름을 만들어 내었다. 홍성사와 규장 등은 국내 저작 출간에 큰 성과를 거두었는데, 특히 홍성사는 《낮은 데로 임하소서(이청준, 1981) 등 기독교 문학서를 다수 출간하여 한국적 신학, 신학의 상황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기독 출판계는 2000년대 들어 위기에 직면하는 데, 그것은 담론과 서사의 빈곤에서 비롯되었다. 출판은 시대의 욕망을 반영하는 까닭에, 몇 가지 주요한 트랜드를 형성한다. 베스트셀러의 면면을 보면 시대가 보인다. 욕망과 결핍의 서사가 읽힌다. 그것이 당연하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출판은 시대와 격리된 외딴섬에 갇힌 신세가 된다. 그것은 모순이다. 안타깝지만, 한국의 기독교는 오늘 한국 사회의 이슈에 제대로, 적절한 시기에 조응하지 못하고 있다. 기독 출판도 그렇다. 2013년 1월, 한 매체의 요청으로 기독 출판계를 정리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 정리한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기도(응답), 제자도, 래디컬/본질/교회 혁신, 제자 훈련(교회성장을 위한 방법론), 삶, 영성/임재/천국/체험, 성령론, 간증/희망/성공/번영, 지혜/습관/자기계발, 성경통독/성경배경사, 메시지(유진 피터슨), 이어령/이민아, 이찬수


그렇다면 2013년은 어땠을까. 몇몇 대표 저자들의 이름이 바뀌었다는 점만 빼곤 대동소이하여, 새로 정리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수년 간 반복되는 트랜드라고 할 수 있다(‘반복되는 트랜드’를 트랜드라고 할 수 있다면). 지난 몇 년간 ‘정의’ 열풍이 거셀 때도 기독 출판 시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몇몇 관련 책들이 선보였지만, 시장에선 외면당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최근 들어, 복음의 본질을 강조하는 흐름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역시 반복되는 현상이다. 한국기독교출판협회가 발표한 ‘2013 베스트 종합 통계’에서 1위에 오른 《팬인가 제자인가》(카일 아이들먼, 두란노, 2012년 4월 출간) 같은 도서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20여 년 전에 출간되었던 카를로스 오르티즈의 《제자입니까(두란노, 1989년)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기독 출판의 가장 강력한 불변의 트랜드는 기도, 성령, 교회, 제자도 등의 전통적 주제이되,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성공 지향적 감동 스토리(간증)와 자기계발과 처세 방법론이다. 그리하여 각성된 독자들, 특히 젊은 독자들은 기독교 서적에서 급속히 일탈하고 있다. 


새로운 키워드가 없다는 것은 시대 이슈에 대응하는 담론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복음’은 있되 ‘상황’은 없고, ‘텍스트’는 있되 ‘컨텍스트’는 없다는 뜻이다. 세상에서 고립되어 오직 자신들만의 이슈를 반복하여 말할 뿐이다.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복음의 상황화가 실패하였다는 것이며, 기독교인에게 기독교인다운 삶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기독 출판의 위기는 곧 한국 기독교의 위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복음의 본질, 하향성을 지향하는 출판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거듭 말하지만, 담론과 서사의 빈곤을 극복해야 한다. 첫째, ‘좋은 담론’이 필요하다. 자기계발과 처세의 방식으로는 복음의 본질을 구현할 수 없다. 헨리 나우웬은 “복음은 상향성 중심의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기본 전제를 근본적으로 전복시킨다. 이것은 충돌을 야기하는 동시에 사회를 뒤흔드는 도전”이라고 말했다. 복음의 본질은 하향성이다. 모리스 블랑쇼는 “방황하는 자의 조국은 진실이 아니라 유배”라고 말했다. 확고한 신념에 사로잡힌 자들이 아니라, 방황하고 회의하며 묻는 이들이 진실을 찾을 것이다. 기독 출판은 ‘현대의 노마드’들에게 답해야 한다.   


둘째, ‘번역된 담론’의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 번역되는 순간, 그것은 이 땅의 언어 감수성을 잃는다. 좋은 번역서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인 저자 계발이 시급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소통되지 않는 이론은 담론이 될 수 없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복있는사람)가 2009년부터 국내에 번역되어 많이 팔리고 있어 반갑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쉽다. 오래된 성서 언어를 같은 문화권에 사는 벗들의 언어로 번역하고자 했던 피터슨의 의도는 과연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 것인가. 


셋째, ‘우리의 서사’가 절실하다. ‘순전한 기독교’의 본질을 지키되, 일반은총(기독교에선 하나님의 은총을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으로 구분한다. 간단히 정의하면, 일반은총은 하나님께서 세상 전반에 부어주시는 은총이며, 특별은총은 기독교인들에게만 허락한 은총이다. 여기에선 특히 언어적 관점을 반영하여 사용했다. 일반은총은 모든 이들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언어와 문화를 말한다.)을 구현해야 한다. 특별은총의 언어는 교회 내에서 통용하면 된다. 무엇보다 세상과 소통하는 출판을 원한다면 세상의 언어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스님들의 책들에 왜 현대인들은 위로를 얻는가. 그들 콘텐츠의 옳고그름을 떠나 말하고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좋은 서사는 이야기로서의 완성도가 중요하다. 기독 출판계에 과연 작가는 있는가. 설교가들의 책은 넘쳐 나지만, C. S. 루이스나 필립 얀시, 프레드릭 뷰크너 같은 작가들은 거의 찾을 수 없다. 이청준, 구상, 권정생 같은 기독교 작가들의 명맥은 이어지고 있는가. 아쉽고 속상한 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화제다. <타임>지가 ‘2013년 올해의 인물’로, <포춘>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했다. 어린 아이나 몸이 불편한 자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하여, 그가 강론할 때면 그들을 제일 앞에 앉도록 한단다. 세계화와 자본주의, 부자와 권력자들을 향한 매서운 비판은 그의 일관된 메시지다. 구조적 악은 싸워야 할 불의의 세력이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가난한 이들을 주목한다. 그는 성도들에게 “교회 안에만 머물지 말고 밖으로 나가 실천하라”고 말한다. 그의 메시지는 사뭇 불편하다. 그런데 민중들은 환호한다. ‘불편한 책’을 기다리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종교의 길이며, 기독 출판의 길이어야 마땅하다.